사도행전 7장 37-53절 “이스라엘 반역의 역사” / 찬46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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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은 아브라함, 요셉,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어제는 그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나누었구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심으로 구원하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적하고 율법을 거슬러 행하였다고 반박합니다.
이 모습이 예수를 통하여 믿는 자를 구원하셨지만, 예수를 대적하고 반박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동일함을 선언합니다.
모세의 말, 즉 율법에서 그 근거를 찾아 전합니다.
사도행전 7:37–38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스데반이 주목한 부분은 모세가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 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고 말한 부분 이다(신 18:15).
신명기 18: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스데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웠던 모세의 구원 사건을 그림자로 가져와 실체이신 예수의 구원 사건을 강조하려 한다. 그렇게 말한 모세를 보라. 그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가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앞서 솔로몬 행각에서 행해진 베드로의 두 번 째 설교에서 등장했던 내용이다(3:22-23).
사도행전 3:22–23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야교회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스데반은 그들이 모세를 ‘거절했다’고 표현한다.
사도행전 7: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광야보다 바로의 통치 아래 있었던 애굽을 동경한다. 그 결과 모세가 시내 산에서 더디 오자 모세의 생사를 의심하며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해낼 신들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한다. 그들은 애굽에서 가져온 금붙이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었고,그 우상이 자신들의 운명을 인도해줄 신 이라며 경배한다.
그럼에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44절 이후를 보면 성막과 성전을 통하여 그 백성을 만나십니다.
사도행전 7: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스데반이 강조하는 모세의 정체성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약속의 땅으로 안내할 지도자광야 여정을 함께한 선지자다. 모두 예수의 정체성을 비추고 있다.
모세가 말한 것처럼 나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겠다라고 하였는데 그 선지자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말합니다.
신명기 18: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사도행전 3:22–23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그들이 믿는 모세의 예언을 토대로 그들을 책망합니다.
사도행전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장막을 두고 불순종했던 이스라엘과 그 장막의 실체이신 예수를 죽인 이스라엘이 비교된다.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건물 성전에 가두었다면,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죽인다. 성전은 역사상 가 장 화려한 모습으로 위용을 과시하며 서 있지만 하 나님은 거기 안 계신다. 이것은 예수가 신랄하게 꼬 집으셨던 내용이기도 하다(눅 19:45-46; 21:16).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시대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능력이 되는 것은 알아서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능력입니다. 행동하는 것이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워서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직장에 가서 그 수학을 활용하는 것이 능력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을 아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이 것은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 성령을 알기만 하지 능력을 발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한국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되게 해달라구요.
은혜의 방편
말씀을 보고 듣고 순종하는 것이지요.
기도하며 부르짖는 거에요. 간절히 기도하는 거에요.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는 거에요. 안되면 자신이 예배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앎으로 그친 신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이 새벽이 됩시다.
옆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기도합시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스데반처럼 담대하게 주의 복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제자들처럼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종교지도자들처럼 지식으로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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